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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고/그냥

블로그란 어떤 것

by 하와이안걸 2016. 10. 24.


1.
지난 주부터 본격적인 이사 준비에 들어갔다.
정신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렇게 되었다.
아, 이사 날짜는 11월 10일. 
남편 생일 하루 전날이다.

"이번 생일 선물로 하루만에 정돈된 집을 선보일게."
"좋은데?"

농담이었는데 남편이 솔깃해한다.
일났구만.

참고로 올해 남편은 만으로 마흔이 된다.
너의 생일 플러스
불혹의 부부가 탄생하는 날. (네. 제가 더 빨라요;;)



2.
어설프게 을지로도 반나절 돌아보고
인테리어 업체와도 벌벌 떨며 접촉을 해 보았지만
가장 든든한 건 레테 검색하는 것;;;

한때 자주 가던 건강관련 카페에서는
다들 의사처럼 답변을 달아줘서 불안한 마음도 컸는데
집은 몸속과 달리 눈에 보이니까!

기존 마루 철거 안하고 위에 장판을 깔았는데 마루가 썩었다면? 썩은 거겠지!
안방 화장실을 창고로 리모델링 했다가 나중에 집이 안팔렸다면? 안팔린 거겠지!
문턱을 없앴는데 문틈에 공간이 생겨서 겨울에 추웠다면? 추운 거겠지!

어디에 거짓말이 있고 추측이 있겠는가.
무한신뢰 레몬테라스!
이번에 인테리어 잘 빠지면 온라인 집들이 할게요잉!



3.
인테리어는 업체별로 가격이 너무 천차만별이었다.
그 와중에 저렴하고 합리적인 곳을 찾아보면 이미 몇달치 예약이 밀려있고,
다소 비싸지면 속 안썩이는 곳을 찾아보면
예산이 너무 비루한지 까이기 일쑤 ㅠㅠ

그러던 차에 맞춤법은 틀렸지만 진정성이 보이는 한 쪽지에 이끌려
화곡동 가로공원로에 위치한 모 인테리어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환갑이 될랑말랑한 아저씨들 몇 분이 계셨다.

'아줌마 혼자 왔다고 바가지만 씌워! 나 을지로 견적서 있는 여자야!'

명함을 건네주시며 하나하나 견적을 뽑아주시는데
가격이 을지로. 이럴수가!!!
게다가 거기 계셨던 분들이 전부 공동 대표이자 숙련공들.
그동안 궁금하고 애매했던 것들을 싹다 물어보았다.
신나서 대답하시는 사장님들 ㅋㅋㅋ
그중 한 사장님의 일침에 여기로 마음을 정했다.

"인테리어 업체라는 건 알아서 다 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결정할 것들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귀찮을 정도로 소통을 해야해요.
그냥 다 일임하시는 스타일이면 저희는 못합니다!"

크게 감동을 받아 집에 오니 가견적이 와 있었다.
그런데 한글이라 열 수가 없네;;;
뷰어로 어찌어찌 열어보니


사장님 ㅠㅠ




4.
중고나라에서 물건을 파는 일에 속도가 붙었다.
큼직한 가구를 먼저 빼버리고 싶은 마음에
떨이로 막 팔다보니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ㅠㅠ

하지만 가구가 나간 자리를 청소하고 새로 포지셔닝하는 일은 너무도 즐거워서
예정에 없던 가구들도 시장에 내놓아볼까 생각중이다.

안쓰는 새 화장품, 쓰다만 비싼 화장품, 사용빈도가 적은 주방가전, 넘치는 냄비와 그릇 세트, 안하는 액세서리, 버리기 아까운 옷과 가방 등등...
닥치는대로 올리고 팔고 나눔하고 있다.
그 결과 이번 주말에는 무려 48만원어치의 수익을 올렸다. (배송료 포함)
신기하다. 팔 게 이렇게나 많았다니.
이 작은 집 구석구석에 돈이 숨어있었다니.

이 기세라면 거실에 타일을 깔 수도 있겠어!
이 기세라면 식기세척기 빌트인도 할 수 있겠어!
이 기세라면 폴딩도어도 할 수 있겠어!

오늘도 휘청거리는 미니멀리스트의 결심.



5.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다보니 몇몇 블로그를 자주 간다.
스티커랑 문장부호를 남발하지 않는 곳들이라 눈이 편안~
인테리어에 참고할 부분만 슬쩍 보고 가려했으나
결국에는 사적인 일기장 앞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만다.

아름다운 아기와 반려견 사진에 울컥하는 것도 잠시
눈물을 훔치며 '바닥은 장판인가요? 마루인가요?'라고 댓글에 치고 있는 나;;; (지웠어요)

감정이 순해지면서 드는 생각은 세상엔 아직도 맑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보여지는 것이 100%가 아닐지라도 블로그는 필요해! 블로그는 소중해!
뿌듯한 마음에 포스팅 10년치를 선결제했다;;; 
할인이 많이 되더라고;;;;;

(이 글 뒤에 뒤에 몰래 끼워넣은 도쿄여행 1~4도 봐 주세용!)



6.
아빠가 편찮으셔서 매일 병원에 간다.
치료를 받을수록 점점 입안이 헐고 입맛이 없어진다고 해서
매일매일 잔치처럼 먹는다.

입맛이 남아있을 때
드시고 싶었던 것을
많이 많이

나는 옆에서 거저 먹는다.
웃으면서 신나게.






TV장이 없어진 현장 (LG 화이팅 ㅠㅠ)


7년 친구 밥솥마저 중고나라에


아직도 이런 걸 먹고 있으니까요 ㅋ


비계의 소중함을 왜 이제 알았나


아빠 덕분에 요즘 유진식당에 출근도장 :)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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