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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떠나고/구구절절

아무 생각 없이 도쿄 1 (20160922)

by 하와이안걸 2016. 10. 4.


*
남편이 여름 내내 파견 근무를 나가면서 휴가를 쓰지 못했다.
추석 전후로 일본에 가고 싶다는 민원을 접수하고
휴가 이틀만 써도 되면서 저렴한 티켓을 겟!


다 좋은데...
내가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할 줄은 그땐 몰랐던 거지.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감만큼 걱정도 함께.
뭘 먹을 수 있지. 뭘 안 먹을 수 있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목적 없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6.9.22.목요일.


아침 7시 40분 비행기라 오랜만에 새벽 기상 ㅠㅠ
손수 갈아 만든 두유와 사과로 우적우적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남편이 진에어 앞에 줄을 서 있는 동안 나는
1층 와이드모바일에서 포켓 와이파이를 받고
3층 신한은행에서 써니뱅크 환전을 마쳤다.


재빨리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을 싸악 돌며 셔틀 부탁 받은 물품들을 챙기는 데...
아, 중국 사람들 정말 많아서 비행기 놓치는 줄 알았다 ㅠㅠ



이제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허브 라운지로 고고!
둘 다 라운지 무료 이용되는 카드 쓰면서 올해는 참 격조했다 ㅠㅠ
여기 들러보겠다고 완전 서둘렀는데 면세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허겁지겁 먹방 ㅋㅋㅋㅋㅋ



보이는가! 저 뒤에 흰자들이 ㅋㅋㅋ



나는 집에서 싸온 계란 흰자를 메인으로 곤약국수, 짜장떡볶이를 반찬처럼 먹고,
두유 세트를 거부한 남편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컵라면 외 많은 음식들을 흡입했다.
마지막으로 물 한 병과 함께 보온병에 뜨신 커피를 담고 빠이빠이.
저가항공은 이제 주스도 주지 않는다고!


남편이 몰래 담배를 사는 동안 나는 아멕스 무료 커피를 받겠다고 파스쿠치에 줄을 섰는데
매니저와 함께 있는 이하이 발견. 어머나. 


7:50 날다

9:50 닿다



10시 30분쯤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나 비가 주룩주룩.
도쿄역까지 가는 900엔 버스를 타려는데 줄줄이 만석이라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인터넷으로 예약해도 되지만 언제 공항을 빠져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대신 기다리는 동안 돌아가는 버스 예약을 해 놓았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허기가 지는 건지...
남은 계란 흰자와 냉동해서 싸온 바나나 쉐이크를 꿀떡꿀떡 다 먹었다.
벌써부터 불길한 조짐이...


도쿄 입성을 알리는 시원한 호지차 한잔!


좋은 버스 당첨되면 충전하면서 갈 수 있다옹



12시 45분에 도쿄역 도착!
첫 날 일정은 유가와라(湯河原) 온천에서의 1박.
도쿄역 코인락커에 큰 짐을 넣고 백팩만 메고 갈 생각이었는데,
일본도 휴일이라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코인락커가 모두 꽉꽉 차 있었다 ㅠㅠ


어쩔 수 없이 짐을 끌고 기차표 구매하고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에키벤(駅弁) 체험을 위해 도쿄역 플랫폼 내에 있는 에키벤 마츠리로 향했다.
전국의 에키벤으로 가득한 그 좁은 공간에 사람도 너무 많아서 ㅠㅠ 
캐리어 끌고 골랐다가는 너무나 민폐.
나는 밖에서 짐을 지키고 남편에서 두 개를 고르라고 시켰다.



열차에 탔는데 구조가 심상치 않았다.
그나마 자리도 없어서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더니
도시락 꺼내기가 너무나 민망한 것 ㅠㅠ
 


신칸센이 아닌데 에키벤 먹어도 되냐고 토모미에게 라인을 보냈더니
열차에 따라 다르다며 뭘 탔냐고 물어왔다.
도카이도혼센(東海道本線)이라고 했더니 아~ 먹어도 된다고 ㅋㅋㅋㅋㅋ 
그러나 도심을 벗어나서부터 먹는 것이 좋다고 구체적으로 역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역까지 기다리기도 너무나 배가 고파서 ㅠ.ㅠ
결국 요코하마를 지나자마자 뚜껑을 열고 말았다.



성게알 도시락 1200엔, 닭고기 도시락 780엔


고급진 것과 평범한 것을 같이 먹자는 취지로 저렇게 골랐으나
우니(성게)를 어떻게 이김 ㅋㅋㅋ 비싼 밥의 완승이었다.
그리고 왼쪽 하얀 비닐 안에는 닭강정이 숨어 있었다. (역시)
다 식은 걸 왜 사온 거야!


어쨌든 이렇게 저렇게 일본에서의 첫 쌀밥을 섭취하는 중...
아... 맛있어서 걱정이라니...


공기가 달달해



2시 조금 넘어서 유가와라역에 도착했다.
낮게 깔린 산구름이 뿜어내는 공기가 시원하고 상쾌했다.
일본에서는 '공기가 좋다'가 아닌 '공기가 맛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딱 그 말이 생각났다.
맛있는 공기...


여기는 산과 바다 모두와 가까운 유가와라역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온천 셔틀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스기나(杉菜) 온천에 체크인.



유카타 사이즈를 골라봅시다!


저 문을 열 때가 가장 설레지요


그냥 그렇구만...


보이다 마는 뷰에...


웰컴 만주도 뭐 그닥 (다행이야..)



고급도 하급도 아닌 애매한 중급 여관을
애매한 가격, 애매한 확신으로 예약을 하다보니 역시나 감상도 애매하다 ㅋㅋㅋ
아예 저렴한 여관으로 하고 '가격 대비 이 정도면 괜찮네!' 였더라면.


복잡한 마음이 오가던 흐린 오후.
일단 대욕장에서 새벽부터 쌓인 피로를 1차로 씻어내고
6시가 되어 저녁이 차려져 있는 식당으로 갔다.


됐어! 됐어!

"여기 좋은 곳이네~~~"
"이 가격에 잘 왔네!!!"


(밥과 함께 진정한 평가를 시작하지...)


깜찍이 사시미


간이 약한 나물과 조림


베이컨말이와 생선말이


붕장어 버섯 전골


계절 한정 메뉴였던 열목어 조림 (초점이 왜..)



그 외에도 밥과 된장국, 찰밥, 푸딩 등이 계속 나오는데 ㅠㅠ
정말 쌀알 참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남편은 병맥주와 사케를 차례로 시키면서 만족감을 표했다.


식사 후 돌아오면 어느 새 잠자리가 단정히


낡았지만 그래도 시골 여관의 정취를 만끽하며 잘 왔다고 자찬하던 중 
동네 부동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사오기로 한 사람들이 날짜를 못 맞추게 되었다는 소식에
그 오지에서 보이스톡과 문자를 번갈아가며 날짜 조율을 하느라 스트레스 ㅠㅠ


결국 우리가 좀 더 번거로운 쪽으로 계약이 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둘 다 마음 상하는 일이 발생.


오랜만에 산짐승이 되어
낡디 낡은 시골 여관 한 층이 다 울리도록 펑펑 울었다.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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