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여의도와 인연이 많다.
어릴 때는 쌍둥이빌딩에서 주는 저금통을 받겠다며 마포대교를 건너다녔고
중학교 때는 잠깐 살았지만 애매한 신분(?)으로 외롭고 기죽었던 기억이.
IMF 때 휴학을 하고 시작한 알바도 여의도.
졸업반 때 운 좋게 잡은 첫 직장도 여의도.
하지만,
여의도공원의 앙상한 나무들이 쭉쭉 우거지는 동안
그 안을 산책할 여유는 단 한번도 없었다.
여의도 안에서의 나는 늘 춥고 허기졌다.
엄마와 장사를 준비하던 어느 정신없던 여름.
메인 메뉴 중 하나인 닭칼국수의 가격을 정하기 위해
닭칼국수 맛집을 검색했더니 여기가 나왔다.
이영자 맛집 리스트에도 있던 곳이라 옳다구나 출동!
평일 점심 시간을 지나서 갔는데도 줄이 길어서 놀랐고,
가게가 한 군데가 아니어서 놀랐다.
그리고 엄마는 국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놀랐다.
엄마, 여기는 여의도잖아!
여의도면 뭐...
엄마는 진짜 오랜만에 여의도 땅을 밟으신 거였다.
기다리면서 계속 여의도에 살던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절, 엄마도 엄마 나름의 힘듦이 있었다.
하지만 아픈 두 마음으로 같은 생각이 자꾸 스며든다.
여기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꾸미가 이 정도면 적정 가격 아니야?
닭육수 뽑고 나면 고기가 엄청 남아. 더 줘도 돼.
꾸미 [명사] 1. 국이나 찌개에 넣는 고기붙이. 2. <북한어> ‘고명1(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의 북한어. |
(네이버 사전 참고. 고조 우리 식구는 2번으로 쓴다요.)
여기 와서 이 김치를 처음 먹고 너무 놀랐다.
보쌈김치처럼 달달하고 꼬들꼬들한 식감의 김치가
이렇게 한 뭉터기씩 나오는 게 황송했달까.
보쌈에 나오는 무말랭이를 좋아한다면
여기 김치는 무조건 호!
네. 새로운 파티원과 함께 다시 와봤습;;
만두와 비빔국수가 궁금해서.
만두... 정말 옛날 맛인데 고급진 옛날맛이랄까.
아, 설명이 어렵지만 중독성 있는 맛이다.
싸가더라도 무조건 시킬 거야.
콩국수 먹을 때도 면이 쫄깃하니
비빔국수와도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찰떡!
쫄면과 중면의 중간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쫄면을 몇 살까지 먹을 수 있을까 ㅠㅠ)
이후에도 새로운 파티원과 계속 계속 방문하며;;;
뜨거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냈다.
그뿐인가. 시청 진주회관에도 방문해서 비교도 해봤지.
(김치가 아주 다름!)
여의도하면 칼바람만 떠오르는 나에게
진주집 콩국수는 신비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의외로 허름한데 의외로 기품있다.
의외로 뻔하지만 의외로 진국이다.
진주집을 계기로 여의도 지하에 숨어있는 노포들에 관심이 생겼다.
하나씩 맛보며 우울했던 10, 20대를 치유해볼 생각이다.
맛있는 음식에 스르륵 풀리는 나이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다음 파티원!
이젠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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